100년전 폴 고갱이 부른다
독도화가의 HAITI 구경을 나선 괴나리? 봇짐
아이들 팬티150개 옷가지, 아이들 독도학생그림 15점부체5점 족자6개
후원: 모간 김,황미래,신선향,재일정비,김재철
(일행들은 돋보기안경 천개, 구호약품 3박스등)가지고 하이티구경에 나섰다
HAITI 풍물
세상에 일런일.... 한 다큐해 볼라꼬
수도 Port-au-prince 시장 풍경
돼지출현
팔것도 없지만
비싼 백화점도있다 (물 한병에 $3)
외각 시골 Cabaret 쯤 장터
거리스케치에서 만난
"저도 아티스틉니다" 해서 따라간 그의 아트리에
그들과 친해지려고 때로는 쓰레기 더미에 들어가야 했다.
사진도 찍어주고
폭포수 위에 노니는 돼지들 낭만이 넘치나유?
흰둥이, 깜둥이 ,점박이 돼지들은 천국
이 나라 대통령궁은 어떨까?
이렇게 조용한 하이티 정치 1번지에서 그래도 외쳐보는 "독도는 한국땅!땅!
대통령궁 앞의 문화상품들
하이티 학교
드디어 찾앆다. 흙으로 구운 쿠키를 먹는 아이들
la제일정비에서 준 옷으로
"나도 줘요~" 독도가 뭔지 무의미 하지만 외쳐봅시다. 꼬레아 독도!
모간이 준 펜티로 굳이 찍겠다고해서
독도든, 정치든 할 말 있음 해봐요 "에~멜치 뽁금ㅋㅋ"
본인들의 인터뷰를 궁금해하며 봐야겠다고
영어= 불어 통역자들과
독도전시장 물색
앞으로 독도 홍보를 하겠다는 학생들
2001~8년 독도의병대에서 권용섭화백상 수상자들 하이티홍보전시를 하기로 했다.
하이티 아이들의 독도 따라그리기
스스로 지켜가야 하는 하이티치안
이렇게 접근하기까지는 상당한 로비?
잠시 검문 ! 왠지 거리엔 사람이 죽가고 <흰천덥은>
자체 치안은 불가 현제 UN군이
이런곳만 찾아 다닌 것 같지만 그냥거리
희망이 보인다며 반가워 했던 장면
그들의 교통수단
손가락을 비비며 1$만 달라며 따라오는
상여처럼 화려하게 꾸민 자동차, 그림그리는사람필요 할 텐데 눌러앉아 차에 독도나 그릴까.
ㅏ
어쩌다 웨딩 촬영기사로
쓰레기장을 뒤지는 사람들
빨래터
침울한 도심을 등진 해변, 바다에 나무가 있네
폴 고갱의 낭만을찾아 100년전으로 기행을 떠나볼까
하이티의 케릭터 흙 쿠키
아름답게 보려고 노력했다.
"내 눈을 주시요" 15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볼끼싶
폴 고갱이 다녀간 그 후 100년의 하이티의풍물을 근대의 화가의 시각으로 보는
하이티,아이티,헤이리로 불려지는 Haiti
2009 연말
동포사회의 외로움을 달래려는지 예술단체, 사회단체, 독도단체모임에 까지 연회장의 초대장이 쏟아진다.
지난 달 서울에서 고종황제 칙령41호 반포를 고증하기 위한 기념으로 세종문화회관의 우리가족의 110독도 전은 너무나 벅찬 행사였다.
영광과 후유증이 교차가 '바쁨'이란 단어를 남긴다.
전시회의 수입금으로 빵대신 흙으로 쿠키를 구워 먹는다는 중남미 haiti 아이들을 찾아가기로 했지만 전시결과도 마무리 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담으로 다가 온다.
하지만 지난 해 남미 페루의 8도 강진 피해 지역의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온 몸을 감싸고 있다.
기근과 질병에 처한 아이들을 향한 나의 마음은 Haiti 기행으로 끌리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갈까? 말까? 망설이는 바람에 비행기요금이 $600에서 $900으로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얼마나 머뭇거렸는지 화실 회원들이 부추긴다.
"하이티 다녀오세요. 선생님"
"샘은 맘먹은 데 안 가면 몸살 날까 우리가 불안해요."
"말릴 수 없는 역마살이야 ㅋㅋ"
나는 은근히 좋으면서 질문했다.
"여러분들이 강의가 빠지면 손해일 텐데"
"염려 마시고 숙제 주고 가면 되잖아요.ㅎㅎ"
"그러면 1월 얼바인 독도전시에 모두 참석시킬테니 독도그림들 10점씩 그려놓으세요."
사정상 겨우 스무 권도 못 가져 온 세종미술관의 팜플렛을 회원들께 만 나눠드리고 하이티로 간다.
회원들의 구호 정성이 여기저기서 모였다.
아이들 팬티 안경, 옷가지, 약품, 20$짜리 캐시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도네이션이 들어왔다.
사실 나는 의료선교가 보다가 가난한 나라일수록 미술적 소재는 강렬할 것이라는 호기심과 특히, 폴 고갱의 무대였기에 호기심도 잔뜩 발동이 걸린것이다.
매번 해외여행에 뺄 수 없는 독도그림과 홍보자료 아이들것과 20여점 챙긴 괴나리 봇짐을 싼다.
2009년 12월 13일 (토)밤 10시
가족들은 이제 배웅조차하기 지겨운지 LA공항에 나를 팽개치듯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열린 문에서 "아빠 말라리아 조심해~" "말라리아는 뭐 조심한다고 되는 거니 니들 정성이지"
"그래 아빠 그럼 기도 할 게~ "하며 휭 하게 집으로 돌아 가버린다.
저것들이 나 빼고 뭐 재미있는 일 있나?
틀림없이 인터넷 한국 연속극 따위나 보러 가는 것이다.
전시 마치고 소형차'미니쿠퍼'를 사 달라고 조르는 중인데도 못 사주니 도망이나 가자.
이렇게 현실 도피 식으로 떠나기만 하는 나를 그 때 마다 껴안고 뽀뽀하고 손수건을 흔들 줄 바라는 내가 욕심이지.
벌써 일행이 와있다.
한의 침 치료와 안경 돗수를 재어 안경을 끼워주는 봉사자 부부였다.
두 분은 지난해도 페루에서 함께 한 의료봉사의 열정이 대단한 부부다.
(사진=나지막하고 깨끗한 집 한 채, 하이티 대통령 궁 앞에서)
또 한 독도홍보를 할때 독도그림 전 추진위원이 되어 나의 외길을 동행해 주시는 천사같은 사람들이다.
"안녕하세요 지난해 페루서 보고 첨 이네요. 이번에도 같이 고생합시다."
"고생은 뭐 즐기는 거지." "그래요 신나게 놉시다."
(ㅋㅋ이래서 결국 호텔 코코낫서리의 공범도 된다)
고약한 정치꾼들에 의해 지구상에 두 세 번째 가난하고 무법천지라는 나라 Haiti
불명예를 얻은 운명의 나라 처럼 강물인듯, 길인 듯 꼬불꼬불한 라인과 산맥과 에메랄드빛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Haiti상공을 낮게 나르고 있다.
어디서나 천연계는 아름다웠다.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 는 말씀을 확인 한다.
12월14일 (일)아침
Port-au-prince (하이티의 수도)공항.
소문대로 가장 가난하여 굶주린, 기근현상을 보기 위해 LA에서 뉴욕-헤이리 10여 시간의 비행에서 내렸다.
국제공항인 평양에 순안공항과 흡사한 2층 건물 속에 검색 대를 빠져나 왔다.
공항에서 기다리는데 새까만 흑인들이 빨간 모자에 옅은 감색제복에 번호를 붙인 짐꾼들이 왁짜지껄 벌 때처럼 달려든다.
나는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무슨 보안사항이라고 무지하게 통제를 한다.
시설부터 낙후하더니 약속한 마중 자들이 나왔지 않다.
할 수 없이 스케치북을 펼쳐 2시간을 기다리며 사생을 시작했다.
Haiti는 80년대 말까지 대통령 장 클로드 뒤발리에의 독재에 대항하여 민주주의 개혁을 갈구하여 일어났던 시민혁명으로 사회 불안이 고조되어 오랫동안 외부에 방문객이 드문 낙후된 나라이다.
공항 내에 있으며 서점, 환전이나 관광정보가 맹탕이다.
한참 뒤 나타난 목사라는 사람들은 긴가 민가 고개를 내 미듯 마중을 왔다.
눈치인 즉 '해외선교'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온 다하고는 찾아 오지 않았단다.
번번히 허탕을 치고 보니 서로의 약속을 못 지키는 불신의 나라임을 짐작 할 수 있다.
얼마 후 두 대의 차가 왔다.
짐짝은 물론이고 우리들까지 꾸깃꾸깃 차에 올리고 문을 쾅, 닫는다.
5분도 못 가 렌터카에는 가스가 떨어져 주유소에 가스를 넣는데 30분이 지나도록 출발을 않는다.
꾸겨 앉아 더위에 참다못해 내려서 물어 보았더니 가스 값 150불이 없어서 흥정을 하고 있다고 한다.
노상에서는 싸움이 났는데 무자비하게 때리고 차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고 구경만하다.
남누 한 차림의 TV기자들이 뭔지 취재를 하고 있다.
눈앞에서는 거지인지 상인인지 먹을 것을 솥째 들고다니며 팔고 있는 모습은 가히 ......(사진)
아직 우리일행은 봉사단도 조직이 안된 상태에서 그들의 말에 초장부터 기름값을 선뜻 $를 내놓는 사람도 없었다.
30여분의 인질?이 끝났다.
사연인즉 내일 주기로 했다며 출발한다.
외상을 한샘이다. 우리는 답답한 속내를 웃음으로 틔웠다.
이처럼 처음부터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주는 하이티
Haiti는 카리브해 여러 나라 중에서 쿠바 다음으로 큰 히스파니올라에 반쪽에 속하며 콜럼버스가 첫 항해 때 발견한 섬나라이다.
'도미니카공화국'과 국경을 긋고 있으며 3분의 일이 haiti 다.
듣도 보도 못한 '도미니카공화국'은 3년 전 나의 미국영주권을 위해 추천,표창을 준 7개국중 한 나라이기도 하여 찾아보고 싶은 나라였는데 이곳에 있다니 새삼 반갑기도하다.
남쪽이 카리브해, 북쪽은 대서양이다. 하이티 섬의 중앙에는 큰 산맥이 있는데 표고 3,175m의 피코 두아트산이 있다.
그런데 고갱은 어디에서 그림의 소재를 찾았을까 고갱의 그림은 무척이나 낭만의 섬으로 표현되어있는데 (사진= 고갱그림들)
복잡은 수도 Port-au-prince 를 통과해 호텔로 가는 길이다.
거리에는 쓰레기와 돼지들이 자주 돌출해 카메라를 분주하게 열었다 닫았다 하게한다.
그런 거리와는 구분된 깨끗한 호텔에 여정을 푼 대원들이 봉사 준비를 위해 안식처를 꾸몃다.
대원 중 한의사가 있어 나의 전염병 예방 무대책을 보고 그는 심히 염려하며 말라리아 피하는 법을 알려주는데 가히 주눅과 겁을 주는데 "모기에 물리지 말고 현지 물로는 양치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초조한 일정에 강력한 성령의 체험을 해보려고 첫 기도회를 가졌다.
현지 통역인, 간호사, 양의사 둘, 한의사 셋, 목사들, 여학생 둘, 복지센터원장 한인회단체장 등 18명이 모인 것이다.
다음 날 봉사 할 곳 탐색에 나섰고 나는 이곳 저곳 살피며 영상으로, 또는 화첩의 그림으로 하이티의 인상을 취재했다.
의약보급을 위해 미국에서 미리 붙인 약 상자를 찾으러 교회연합회로 갔다.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공항화물로 가니 UPS로 갔다고 하고, UPS에서는 협회로 보냈다고 해서 다시 협회로 가니 "약품이 도착해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금쪽같은 하루가 깨졌다.
이곳의 행정이 이 모양 이라는 것을 보여 준 단면이다.
전화로 해서 된다면 우리도 불편한 차와 도로에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할 바보들도 아니고.
아무튼 이런 불편과 불가능이 '오지 기행의 맛'으로 여겨야 마음이 편하다.
시차와 피곤에도 불구하고 선잠으로 다음 날이 밝았다.
망설일 것도 없이 의료 봉사팀은 현지로 출동을 한다.
어제부터 자꾸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은 장총을 멘 사설 경비원 들이다.
주유소, 호텔, 학교, 교회까지 모두 총을 들고 근무를 선다.
국가가 치안유지를 못하니까 거리에는 여기저기 유엔군들이 주둔하고 있다.
하루에 1불 벌기도 힘 드는 상황이지만 '로또뱅크 '왜 그리 많은지 10집 건너 하나씩 있네.
투자하고 돈 벌 곳은 '로또'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종교는 아프리카의 토속신앙인 '부두교'(뱀을 숭배)를 믿는데 완전히 악마의 소굴같이 잡신들이 우글거리는 것 같다.
'부두교'는 강신술로 신접하면 병도 고치기도 하지만 저주하여 사람을 죽기도 한다. 그렇게 죽은 자가 또 다음 날 다시 살아나 '존비'가 된다.
존비는 동양의 '강시'같은 귀신인데 혼이 나간 육신이 멍하게 일만하며 살아가는 그런 노예 같은 패인이 되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면 이들은 독초 술이 발달 되여 독살과 당분간의 졸도를 자유로이 할 수 있다.
프랑스 식민생활에서 터득한 이 독초 술에 숫한 프랑스인들이 죽고, 도망치게 했다. 이곳에 참신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는 것은 진정한 구제,구원의 선교가 될 것 같다.
거리에서 만나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배를 한번 쓸고 한 손의 엄지와 집게, 장지를 비비는 모양을 보여준다.
이는 배가 곱으니 돈을 달라는 뜻이였다.
한 젊은 친구에게 관심을 보였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차를 따라오면서 손가락을 비비기도 한다.(사진)
나는 우리집에 집에 널려있다가 버려지는 쉰 밥, 빵 조각이 생각나게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나라 정부는 무엇을 할까?
대통령 궁은 어떻게 생겼을까?
정치적으로 접근해야 할 나의 이유는 혹시 독도 홍보행사를 할 자리를 물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일정은 의료봉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시간과 공간이 여의치 않았다.
이제 당연한듯 지저분한 거리를 통과하다가 "어? 여긴 좀 핸샘한데"
백악관 흉내라도 내듯이 하이얀 건물,
바로 대통령궁인데 삼엄한 경호원이나 근무자를 볼 수 없어 꼭 빈집 같았다.
장난끼 발동, 독도 전 추진위원장에게 부채를 나누어드렸다.
"독도를 아십니까~" 여기서 뭐 하는 거요? 하며 누가 와서 잡아 가기를 기다린 듯이 외쳤다.(사진)
대통령궁 부근이니 예술문화가 있겠다 싶어 안내자께 부탁을 했다.
예술품 쪽이라~
걸어서 20분정도 나가니 어느 교회 결혼예식이 관심을 끌어 나는 잠시 웨이딩 촬영기사가 되었다.
마당에는 트럭이 있는데 그 위에 여학생들이 올라가 너무도 신나게 박수를 치며 놀고있었다.
거리의 책방, 토산품거리가 있었다.
하이티 인들은 회화를 좋아하며 남방특유의 그림을 많이 팔고 있다.
이들의 선조는 아프리카 흑인들로서 전통예술은 아프리카 스타일의 목공예 품이 주를 이루며 그 자리에서 작업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날은 돌아와 호텔에서 독도 전을 하기로 했다.
다니며 만난 화가 몇을 초청했다.
정부기관원도 왔다. 그 자리에서 Haiti 주재 독도홍보대사가 되겠다는 장애자국부서 회장,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국에도 다녀가 상황에대해 진지했다.(인텨뷰,영상)
12월 17일(목)
그 동안 각 대원들은 분야별로 본연의 의료 봉사를 계속하고 있다.
치과. 침, 안경, 뜸, 약 나의 미술치료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엄두도 못 내고 이들 보조에 나섰다.
땀흘러 봉사를 해도 담당교회나 단체에서 식사 한끼나 물 한병도 답례를 하지 못하고 있다.
베들레햄이라는 교회로 식사추진을 했다.
의료봉사 장에 수 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간 나는 촬영을 하며 봉사자들께 부채질이나 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안경사역 부로 갔다.
'정나래학생이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안경을 맞추어 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안경을 서로 받으려고 소리치며 다투고 난리가 났다.
급기야 로프를 가져와 줄을 쳤다.
여학생 안경사역사는 거센 흑인들의 아우성을 피해 교회2층 단상으로 밀려왔다.
그나마 내가 카메라를 설치해 놓은 공간으로 안경장비인 '코코미터'와 물품들을 옮겨 왔다.
거의 폭동수준의 아우성을 나는 숨을 죽이며 그 광경을 화면에 담았다.
'눈을 찾겠다'는 집념의 흑인들을 찍는 나는 한편의 영화촬영 한 것 같다.
아우성,비명과 이를 통제하는 담당자
여학생은 북새통 속에서 하루 종일 땀을 훔치며 황당한 사역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 상황을 간증하며 울음으로 말을 잇지 못 했다.
세상에 이런 비통함이.
옆에서 들여온 얘기다.
이 나라 대통령, 관료들은 임기 중 돈을 챙겨 다른 나라로 튀어버린다고 ......
내 마음에서 잃어버린 하이티의 낭만을 어디서 찾을 까?
양일권단장과 아는 고아원을 찾아 나섰다.
Port-au-prince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한식간이상 달렸다.
농가 속의 고아원과 학교, 수 많은 고아학교들이 있지만 일단 영어를 하는 원장이라야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 구호품을 줄 만한 고아원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다음날 어느 곳에 아이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려고 다시 찾은 것이다.
구호품이래야 거창하게 컨테이너로 가져온 것도 아니고 각자의 가방에서 조금씩 가져 온 것에 현지에서 쌀을 몇포 산것이다.
의약품,라면과 나는 한 친구 (LA재일정비)가 준 옷과 화실회원이 사준 아이들 팬티돌아다니며 인심을 썼고 남은 100여 개를 내 놓았다.
이곳의 아이들은 당채 웃음이 없다.
하루에 두 끼~1끼며 그것도 밥통을 보면 밥이라기 보다가 정말 개 죽 한 쟁반이다.
정부에 대책을 요청을 해도 회답이 없다는 원장의 말에 혀만 차고 한숨 만 나온다.
나는 온갖 재롱으로 아이들을 웃겼다.에~ 웩~
순진한 아이들은 금새 합류했다. "나 잡아 봐라~"며 도망가는 아이를 나는 짧은 걸음을 따라가 잡아 부둥켜 안는다.
부모없이 야윈 아이들 몸에는 정말 찌릿한 느낌에 콧등 간지럽다.
어제 알아 놓은 골목으로 양목사님을 대리고 갔다.
하이티의 상징 그 흙쿠키를 보기 위해가 갔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는 한 꼬마가 서슴없이 먹는 시늉도하며 자랑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허겁지겁 소리를 친다.
그리고는 그 흙 바구니를 들고 안으로 들어 가버리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그들에게는 외국인에게 보여주는 것이 수치스런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 같다.
12월21일(월)
폴 고갱이 그렸던 그 아름다운 해변은 가보지 못하고 흑인 환자들과 시름으로 하이티 여행을 종료한다.
그런데 돌아 갈 미국에 는 폭설이 와서 공항이 통제 된다는 소식이다.
공항으로 가서 역시 연착을 했고 뉴욕에 내리니 패스 할 비행기가 막 나른다고 했다.
찜통더위에서 이번에는 추워서 달달 떨며 눈에 쌓인 뉴욕공항에서 하루 밤을 꼬박 새야 한다.
몇 일 후면 크리스마스인지라 계속 발이 묶일 수도 있다고 하기에 새벽비행기에 빈자리가 있을지? 밤을 새는 사람이 우리 뿐 아니다.
공항은 이틀 째 밀린 승객들의 전쟁이다.
다음 날 8시 비행기에 간신히 일행들이 타고 나와 단장만 남았다.
단장은 바로 뒤 11시뱅기 가 예약되있지만 나는 내일까지 혼자 기다려야 하는 표라서 다급한데 문을 닫아 버린다.
LA에서 전화가 왔다,
화실에서는 한국서 온 도자기작가 김재철회장은 독도도자기전시 상의로 나 오기를 몇 일 기다렸는데 계획데로 오늘 저녁 8시뱅기로 한국 돌아가야 되는 다급한 일로 확인전화다.
오마이 갓
한참 뒤 다시 문이 열리더니 허겁지겁 온 승객의 뭐라고 쏼랑데며 애걸을 하니 통과를 시킨다.
나도 부탁해 봤지만 승무원은 내 표를 보고는 외면을 하며 문을 닫아버린다.
잠시후 다시 열리더니 내이름 비숫한걸 부른다.
"요ㅇ 쎕 퀀~"
" 저요 저, 참 옛썰~ 땡 큐! 아멘 "
마지막 자리를 내가 채웠다. 휴~
속타고 목 마르지만 요즘 공항에서 이놈의 물도 맘데로 못가지고 다닌다.
~그 래도, 그 게 어디냐고 신난 김일병~짠자라 쨘~ 하이티빠이 고갱바이
우리나라 吾園 장승업과 거의 같은 시대에 태어난 폴 고갱은
괴팍한 사람인데다 이기적이고 오만한 사람이였다고 한다.
본래 스탁브로커로 돈을 잘 벌었으나 35세 때 그림만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문화적으로 세련되고 화려한 파리예술과 가족들마져 등지고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미개지로 갔다.
인간문명과 도시문명에 대한 증오하며 고흐와 헤어진 후 그는인공적인 세계를 떠나겠다며 Haiti로 가서 그곳서 살았다.
그는 자연이 곧 진리이며 타히티가 원초적 자연의 이상적 환경이라고 주장했지만 역사가들에 따르면 당시 하이티는 이미 서구문명이 들어가 정치,종교적으로 상당히 부패했다.
고갱의 작품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원시적 색감, 단순화된 형태, 상징적 표현으로 독특한 화풍을 확립해 뭉크와 나비파 등 후대의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화가다.
그가 딸이 죽고 나서 그린 그림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는 불멸의 역작으로, 그 자신뿐 아니라 보는 사람 모두에게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준다.
폴 고갱은 후기 인상주의의작가이다.
그는 지독하게 배곱픔과 고생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림을 죽을 때까지 그렸다.
그의 화우였던 고흐도 말년에 굶주리고 우울증과 신경쇠약과 발작으로 고통받던 그는 아를르에서 잠시 고갱과 함께 지내던 중 싸움이 나서 한쪽 귀를 베어버렸을 정도로 광기를 보였으며 이듬해 권총으로 자살 했다.
그런데 고흐의 귀를 절단한 사건에 대하여 한 독일학자는 고갱이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하여 관심을 끈다. 당시 상황에 대한 모든 정보는 고흐가 아니라 고갱이 전한 이야기를 따른 것이며 경찰 리포트에도 누가 베었다는 사실이 적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후에 고갱 자신이 자기가 잘랐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그 학자의 주장이다.
꼭 이렇게 별난 삶을 살아야 좋은 작품이 나올까?
말세의 혼란스런 지식들을 듣기에 가증스러울 땐 나도 내 귀가 미울 때도 있긴 하다.
화가는 남을 따라 하는 것이아니기에 나의 귀는 안전 할것이다.
그런데 여기저기 총을든 사람들의 눈이 매섭기만 하다.
가능하면 안전한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쭈그리고 앉는곳마다 영락없이 구경꾼들이 모이고 일어서면 또 따라오며 내 엉덩이에 흙을 털어주는 아이들이 꼭 있다. 이렇게 순박하고 다정다감한 민족인다.
그러나 한 때 독재정권의 압정으로 내전이 일어나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죽어같다.
잊고 사는지 포기하고 살아가는지 아직도 회생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천연계의 카리브해의 많은 나라 중에 아이티다 행복했음 좋겠다.(권용섭)
하이티여 내년에 올때까지 바이
2010년7월 25일~31까지 2차 갑니다
그때 초청받아 전시 봉사 제대로 해 볼겁니다
함께 하실 분은은 연락주세용, 봉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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